불교...의 원리를 따를 수밖에 없는가.
고집멸도의 사성제.
고성제.
그러하다. 당연하다. 삶은 곧 고통. 정확하게, 엄밀하게는 부담이다. 슬픔과 우울, 극복하자고보면 극복하지 못할 것도 아니지마는 삶에서 떼놓을 수 없는 지속적인 무게이다.
즐거움, 환희....아무리 짧은 즐거움이라도, 아무리 작은 기쁨이라도 곧 끝나며 따라오는 상실감을 없다 말할 수 없다.
진심으로 느꼈다면 따라오는 상실감도 진심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삶은 고통이다.
집성제.
알 수 없다. 이 삶의 무엇 하나, 처음부터 알고 있지 않았다면, 고통스러운 순간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그것을 벗어날 길이 없다.
멸성제.
열반은 있다. 깨닫는 것조차 가능하다. 경험하지 않고도 알수 있고, 겪지 않아도 고통받고, 무너진 가운데 스스로 홀로 일어설 수도 있다. 도움이 없어도 서는 것은 가능하다.
도성제.
모든 것을 바로보면 가능하다. 있는 그대로, 그대로 바르게 보고,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느끼면, 바르게 알 수있다. 세상 그 모든 것을.
현실은 이 원리가 뒤집혔으니까. 이 판타지 속에서는 그게 역전된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 결국 필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