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떠나지 않아.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위협으로부터도 이곳을 항상 지키겠고,
아무리 좋은 기회라도 여기를 벗어나야하면
그건 내겐 해당사항 없는 거지.
왜 이런 말이 어떤 임팩트를 전할 수 있을까.
이건 말 자체에 대한 것보다
듣는 이의 입장에 의해 의미가 강해진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무언가가 생겼는데
제거하거나 교정하기보다 유지하고 싶은거지.
그리고 근거는 없거나 부족하다기보다,
순수하게 감정에 의한 거지.
너에 대한 배려없이 오히려 너를 강압적으로 어딘가에 맞춰야 하는 상황에 태어났는데,
너는 네가 생긴 방법으로 인해 그게 불가능해.
그러므로 너는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해.
그 자아는 성공이나 긍정을 배우지 못했고 정체가 가장 긍정적인거야.
그러니 항상 절박하지. 자아는 항상 강하지.
그런 너의 전부를 이해해주길 원하는데,
그 방법은 그 모든걸 상황과 환경을 변화시켜주면 좋겠지, 한순간에.
하지만 물리적 환경은 그런식으로 변화할 수 없으니
그냥 그 모든 것 속에서 되어있는 네 모습을
모든 상황을 고려하면 납득되는 최선의 모습으로 바라봐주고
자꾸 무너지려고하는 너에게 눈에 보이는 우상 같이 믿음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원하는거지.
이걸 조금더 끌고가면 어차피 나를 위해 네가 그런 우상이 되어주는 거라면..
내가 좀 이래저래 괴롭혀도 계속 거기 있어줄꺼지?
이런 이야기도 가능해져서 더 심층적이고 복합적인 문제를 만들 수 있는데..
좋다 이거야, 그럼. 이 모든게 의미하는게 뭐냐-
소통이나 교육에 의하기 전에 무언가 내면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는데
표현할 언어나 행동이 없는데도 그렇게 해야만 할 정도로 그게 강한 거지.
이건 이미 존재하는 지식 속에서 해석을 찾을 수도 있고,
스스로 그 속에서 그걸 나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도 가능하지.
그러니까 여기에 이런식으로 그런 것들을 써내는건
후자의 경우라고 볼 수 있다는 말.
돌아와서..
이걸로도 조금 모자라긴 하네.
어... 그냥 인간이 살기 위해선 저 정도로 아주 강렬한 믿음이 없으면
정신과 정서의 기반이 서질 않기 때문이라고 하는게 맞으려나.
결국 그러니까 신에 대한 믿음인데,
신을 세워놓고 보면 난장판이 되니까
신만 빼고 친근한 무언가를 세워서
말은 신처럼 해놓으니까
저런 말투가 나온다는 거구만..
일단 이정도만 하자..
어휴 근데 난 그 믿음이 싫다.
불안하고 흔들리다가 죽어가지 그냥..
왜 처음부터 믿는거야, 그게 문제지.
근데 이렇게 얘기하면 또 믿음이 가진 힘이나 아름다움 같은게 또 얘기할 수 있게 되지..
생각하다 죽겠구만...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겠네.
경제적 이해는 충분히 괜찮은 유인이겠네?
그래서 그런걸 오히려 유혹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
그 유혹에 빠진 자들을 저쪽 세계 사람이라고 보면
이쪽 사람들도 이해되긴 한다.(유럽/중동)
근데 그러고 보면 신기하네.
신과 진리의 말씀에 인격을 불어넣는 것이
마치 소설 캐릭터를 만들어 대사 넣어주는 거랑 똑같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