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화장실을 들어가보기 전에는 안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예상은 좀 더 지저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들어가보니 훨씬 깨끗하고 청결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직접 들어가보고, 확인해보는 것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가볼 수 있다.
하지만 들어가볼 수 없고, 확인해볼 수 없다면?
보통 나는 그런 걸 만나면 즉각적으로 관심이 떨어진다.
집착적으로 알아내야겠어, 알고싶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보통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한데 아주 어려울 때의 이야기고,
그렇지 않으면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건 도처에 있다.
밖에서 흙먼지 묻은 많은 것들을 만지다 돌아와 손을 씻으면 왜
비눗물에서 회색빛을 띠는지,
무의식적으로 손가락 마디에서 우둑 소리를 내면서 왜 그런 소리가 나는지,
혹은 내 가족과 부모가 왜 저런 얘기와 행동을 하는지 등등.
심지어 어느날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예고를 받고도
그리고 그 예고된 상황이 오고 끝나고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되지 않는 때도 있다.
그리고 그때는 그걸 이해할 방법이 있는지도 모르겠어서,
이런 때를 알 수 없는 것, 알수없는 상황이라고 할수도 있다.
미지는 이런 경우 스트레스다.
하지만 이런 건 일상적인 일인데,
매번 스트레스를 받아서야 살수가 없다.
알수없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까?
어떻게 접근할까?
신앙과 종교는 하나의 예시가 되어준다.
그게 신의 뜻이겠지.
따라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스스로 알아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