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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문제 해결

정신과에는 삽화라는  개념이 있다.
조증 삽화, 우울 삽화 등으로 쓰이는 이 말은
우울증이나 조증의 특징이 발현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비정상적인 기분이 지속되고 있는 것에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이 삽화는 극단적으로 가면
환시, 환청과 같은 증상을 동반하게
되는데...
요즘은 약이 잘 나와있어서,
이런 극단적인 상태를
약으로 빠르게 해결이 가능하다

문제는 오히려 환자의 자아나 환경에 있는 경우가
많다.
아주 일반적인 환경에서 아주 일반적인 사람이
일반적인 상황 속에서 삽화가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약으로 증상을 잡고
돌려보내면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다.
앞으로 자기 상태에 대한 인식을 갖고
관리하며 살아야겠지만.

환경이나 자아쪽에서 여기에 취약하게
설계된 사람이 어렵다.
일반적인 상황으로 보이는데
거기서 사실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경우ㅡ
특히 스스로에게
그런 부담을 느껴서는 안된다고
억압하는 자아라면 더욱 그렇다ㅡ,
혹은 일련의 사회적, 공동체적 규칙을 동시에
여럿 위반해버려
사회의 구제책이 사라진 상태의
환경에 있다면..

정신과를 찾아오는 것에서부터
해결을 꼬이게 만든다.
정신과를 찾는 행위에 대한 사회의 일반적
인식이 부담을 가중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근본적으로 가장 큰 문제에 대한
해결과 동떨어진 아주 지엽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배 밑창에 구멍이 나서
침몰하고 있는데
선상에 전구하나가 나갔다면
그거 고치려고 전기기사 찾아갈리 없는 것처럼.

사실 결국 그 해결은 문제의 명료성만큼
명료한 방법이 있다.
환경이 문제라면 자아를 바꾸고,
자아가 문제라면 환경을 바꾸면 된다.
그 뒤에 삽화같은건 약으로 치료하면
그만이다.

물론.. 환경이 문제일때 자아를 바꾸는 것도,
또 특히 자아가 문제라 환경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왜냐면 둘다, 엄청난 시간과 선택, 여러 환경적 압력에 의한 퇴적물을 전부 들어내서 치워야하기 때문이다.

이미 오랜시간 타인과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 자아를 바꾸는 것은 혼자서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자아는 사회적 자아이므로 타인과의 상호작용만이 만들고 변화시킬 수 있으므로
정말로 진심으로 진실되게
그 사람의 자아에 접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자아가 문제인 경우는 더욱 힘들 수 있다.
타인의 협조 없이 혼자서 풀어내야하기 때문이다.
환경은 모든 부분을 오직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그리고 스스로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바꿔야하는데,
익숙한 자아속에서 자아의 문제를 포착하기
어려울 뿐더러 비틀린 자아일수록
자기환경의 요소요소에 극단적인 호불호를
가져 집착적이기 쉽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나 들지 알 수 없고
특히 타인이 돕기위해 바꿔주는 환경은
해결에 도움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해결이 난망하다 할수있다.